“촌장님 ‘고양’이 보셨어요?”
“글씨. 오늘은 안 보이네. 아직 안 왔는가보네.”
“에잉 귀찮게 찾으러 가야겠네.”
‘고양’이가 마을에 오지 않았다는 소리에 파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귀찮게 ‘모아 산’을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왜? 풀어 놓고 키우는 거여?”
“어. 그냥 바깥에다가 풀어 놓고 키우걸랑. 찾으러 가자.”
“근디 고양이는 어따 쓰려고 찾는 거여?”
“아아. 있어. 토목공사 할 때 데리고 다니려고. 가자, 한 참 걸리겄다.”
파이는 궁금증이 가득한 로드리고를 끌고서 서문으로 향했다. 서문에는 나트가 경계를 서고 있었다.
“어! 파이 왔네! ‘고양’이님 보러 가는 거야?”
“네. 나트씨. 오늘은 마을로 안 왔어요?”
“어. 오늘은 안 내려왔어. 요 며칠 뜸 하던데... 뭔 일 있나?”
나트는 파이를 보고서 반갑게 맞아 줬다. 처음 보는 일행에 간단히 목례를 하고서 ‘고양’이가 안 보인다며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에이. 새끼라도 치고 있나보죠. 크크 갔다 올게요~”
“글지? 하긴. 무슨 일이 있을라고. 다녀 와! 올 때 과일이나 몇 개 따와~”
“네~”
나타가 서문을 열어주자 둘은 ‘모아 산’으로 향하는 소로를 따라 걸어갔다.
산이 점점 가팔라지고, 길이 험해지기 시작했다.
“꽤 깊이 온 것 같은디 몬스터나 짐승 한 마리가 안 보이냐. 마을에서 관리하는 산이냐?”
“어? 으음.. 마을에서 관리를 하는 거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뭔 소리여 아까부터 계속.”
“따라와 ‘고양’이만 찾으면 내려 갈꺼니까. 어! ‘돌배’다 아직 남아 있네. 야 이거 먹어봐 엄청 달아. 후릅!”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상한 말만 하는 파이에게 짜증이 났다가 그가 건네는 ‘돌배’를 한 입 베어 물고는 금방 잊어버리고서 보이는 족족 가방에 따서 넣었다.
-아삭.
“쩝. 와. 엄청 다네. 이렇게 단거는 첨 먹어 본다. 전에도 몇 번 먹어 봤는디.“
“이상하게 이 산에서 나는 과일은 다 맛이 끝내 줘. 이따 내려가면 촌장님이 담근 과일 주 먹어보자. 슬슬 맛나게 익었을 거야.”
“흐흐. 과일주라... 꿀꺽. 벌써 기대 된다야”
크기는 크지 않지만, 달콤한 과즙이 가득한 ‘돌배’를 씹어 먹으면서 산을 올랐다. 상당히 안 쪽으로 들어 와서는 파이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바닥을 유심히 쳐다봤다.
“이 근처에 있을 것 같은데... 원래 이쯤이면 내 냄새를 맡고 나오거든.”
“그래? 고양이가 산 깊이도 사네. 천적이 없어서 그런가?”
“어. 천적이 없지. 없어.”
-스르륵.
“어!”
땅을 살피며 파이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로드리고는 뭔가가 풀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였다. 다년간의 전투로 익혀온 감이 경고를 하고 있었다.
“야. 야. 파이.”
“아 조용히 좀 있어봐. 흔적 좀 찾게”
“야 인마! 뭔가 있다고!”
“있기는 뭐가 있어! 여긴 ‘고양’이 한 마리 밖에 없는 곳이야”
로드리고도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이었기에, 풀 스치는 소리만으로도 적의 대략적인 무게나 크기를 유추할 수가 있었다. 뭔가 엄청나게 거대한 것이 풀을 치고 지나가는 묵직한 소리였다.
-스르르륵
“어! 또!”
로드리고는 다시 드려오는 소리에 허리춤을 손으로 더듬었다.
좀 더 가까워진 소리에 방어를 위해 자신의 도끼를 찾았지만, 파이가 무겁다며 마차에 놓고 내리게 해서 손에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꿀꺽.. 야. 야! 파이!”
소리를 죽여 파이를 불러 봤지만, 파이는 여전히 땅만 훑고 있었다. 로드리고가 파이의 어깨를 짚으려고 한 순간,
-크아아앙!
“아악! 괴물 호랑이다!”
근처 풀숲에서 거대한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몸을 날려 왔다.
생각보다 더 큰 몸집에 로드리고는 급히 뒤로 굴렀고, 거대한 호랑이는 그대로 땅을 훑고 있던 파이를 덮쳤다.
“크윽. 파, 파이! 복수는 꼭 해주마!”
“뭐 임마? 이 새끼 보소. 내가 지 목숨을 구해준 게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인데. 고작 한 번 덮쳐진 걸로 도망칠라고?”
말 그대로 집채 만 한 호랑이에게 덮쳐져 비명을 지르고 있어야할 파이가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자신을 쪼아대자, 고개를 돌려 달아날 채비를 하고 있던 로드리고가 그 자세 그대로 고개만 파이 쪽을 향해 돌렸다.
“... 어?”
-할짝. 할짝. 부비부비
-캬오옹~
그곳에선 얼굴에 상처가 나 더욱 험상궂게 생긴 ‘검은 호랑이’ 한 마리가 파이의 볼을 핥고, 얼굴을 그의 몸에 비비며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
-털썩.
“사, 살아 있네!”
“당연히 살아 계시지. 이 형님을 뭘로 보고 이깟 ‘고양’이 녀석에게 잡아 먹힐까봐?”
“아, 아니, 그게... 너무 방심하고 있으니까...근데 그, 그 호랑이는 뭐냐?”
“얘? 내가 키우는 ‘고양’이 귀엽지?”
-할짝.. 커어엉!
“엄마얏!”
로드리고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7미터가 넘는 거대한 호랑이를 정말 고양이 다루듯 하는 파이를 보고선 속해 있던 용병단에서 그를 부르는 별명이 떠올랐다.
“아.. 맞다. 이 자식. 괴물(怪物)이었지...”
둘이 속해 있던 용병단에도 특이한 인물이 많았지만, 그중 파이가 단연 돋보였다. 그래서 그를 괴물이라고 불렀는데, 실력도 괴물(怪物)과 같기는 했지만, 가끔 상상도 못할 짓을 벌이는 바람에 괴이한 물건이란 뜻으로 괴물(怪物)이라 불렸었다.
“허.. 허허.. 저게 고양이였다는 거지? 허...”
“야. ‘고양’아 너 할일 있으니까 같이 가자.”
-끼이잉. 끼잉
여전히 로드리고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파이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마을로 가자고 했는데, 애교를 부리며 거부하는 몸짓을 했다.
“응? 얘가 왜 이러지?”
-끼잉..캬옹
[동물 교감 활성화!]
파이는 ‘문신술법’을 사용했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따라 내려갔을 ‘고양’이의 행동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뭔가 가지 못할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
-캬옹. 캬~오옹
“응. 어. 정말? 이야! 응응. 그래 알았다. 같이 가보자. 야 로드리고 그만 정신 차리고 일어나.”
“어. 어어. 알았어.”
파이가 동물과 이야기 하는 것은 여러 번 본 터라 신기해하지는 않았다. 단지 저런 집채만 한 괴물 같은 호랑이랑도 말이 통하는 줄은 몰랐을 뿐이었다. 주저앉았다 일어나며 엉덩이를 턴 로드리고는 ‘검은 호랑이’의 등에 탄 파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엄마~ 엄마! 고양이 와떠!”
“으응? 그랴? 수호신님 오신겨!”
“응응. 우리 가자!. 고양이 보러 가자!”
“호호. 그랴. 이 것만 널고 같이 가자”
‘모아 마을’에서 부모가 한눈 판 사이에 안기며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기회를 제공했던 꼬마가 빨래를 널고 있던 제 엄마의 옷자락을 부여잡고선 졸라대고 있었다.
매일 같이 내려와 마을 아이들을 등에 태워주거나 꼬리로 장난을 치며 놀아주던 ‘고양’이가 며칠 째 보이지 않아 꼬마는 매우 상심해 있던 상태였다. 그러나 며칠 만에 고양이가 나타나자 엄마를 조르고 있는 것이었다.
꼬마의 엄마는 빨래를 다 널은 후 꼬마가 손을 잡고 이끄는 곳으로 따라 갔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좋아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그녀 또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히히. 엄마! 두 개야.”
“응? 무슨 소리야? 두 개라니?”
“조~기 가면 두 개 이떠”
“응?”
아직 조리 있게 말을 할 줄 모르기에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꼬마를 따라 갔고, 엄마의 손을 놓고선 앞서 달려 나간 꼬마는 약건 언덕진 곳에서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며 빨리 오라고 재촉을 했다.
“알겠어. 이 녀석아. 금방 간다니... 흡!”
언덕에 아까워 지며,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꼬마의 엄마는 숨을 급히 들이마시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캬오옹.
-캬옹.
“야야. 정말 새끼를 치고 있었다니... 이 부러운 자식!”
-부비부비.
언덕 아래쪽에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집채 만 한 ‘검은 호랑이’가 파이의 앞에서 배를 내놓으며 재롱을 부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고양’이 보다 조금 작은 ‘검은 호랑이’ 한 마리가 파이의 볼을 핥고 있는 것이었다.
“으음. 워매. 그럼 수호신이 둘이 된 겨?”
“그, 그러지 않을랑가? 뭐 좋은 거 아녀?”
“그라제! 수호신이 둘이 되면 좋은 거제! 잔치닷!”
-잔치닷! 와아아아!!
꼬마의 엄마 말고도 마을사람들이 소식을 들은 것인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검은 호랑이’ 두 마리와 놀고 있는 파이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로드리고를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수호신’이야기가 나오고 ‘잔치’라는 이야기가 들리자, 부모의 손에 잡혀 ‘고양’이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던 꼬마들이 일제히 큰소리로 ‘잔치닷!’ ‘수호신이닷!’하며 주변을 뛰어다녔다.
“자자, 안전하니까 걱정 마세요. 여기 ‘고양’이 짝이에요. 이름은... 으음.. 남자애니까 고랑이라고 할까. 흠흠. ‘고랑’이 에요! 와서 만져보셔도 돼요!”
“와!! ‘고양’이랑 ‘고랑’이다!”
파이가 마을 사람들을 안심히키자, 꼬마들이 일제히 부모의 손을 뿌리치고 ‘고양’이와 ‘고랑’이에게 달려와 안겼다.
십여 명의 꼬마들이 들러붙었지만, 워낙 거대한 두 녀석이었기에, 서로 치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두 ‘검은 호랑이’는 한참을 꼬마들과 놀아 줬다.
“흠흠. 파이. 저 호랑이도 안전한 거지?”
“네. 걱정 마세요. 오히려 둘이 되었으니, 인근 지역이 더 안전해질 거예요. 거기다 저 녀석들은 새끼를 잘 낳지도 않고, 나아도 한 마리를 오래 키우니까. 더 불어날 염려도 없고요. 그나저나, 어디서 넘어온 거지?”
파이의 말에 촌장은 안심을 하고서,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작은 잔치를 벌여 수호신이 하나 더 생긴 것을 축하하기로 했다.
“원래는 금방 가려고 했는데, 잔치라니까. 좀 이따 가자.”
“그랴. 얼른 가서 ‘과일 주’나 한 잔 꺾자!”
“좋지! 너흰 애들하고 놀고 있어~”
-캬옹.
-캬오.
거대한 ‘검은 호랑이’ 두 마리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누운 채로 파이를 배웅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 주변에 음식을 가져와 서로 나눠 먹으며 작은 잔치를 즐겼다.
= = =
-덜덜덜...
“파, 파이? 저기... 파이님?”
“왜? 갑자기 존댓말을 하고 난리야.”
“그.. 저, 저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파이가 자고 있던 마이클을 깨워서 돌아가자고 했고, 정신없이 자고 있다 깨어난 그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마차로 향했다.
동문 밖에 세워놓은 마차를 향해 눈을 비비며 걸어간 그는 말이 잘 메어져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 말과 연결된 매듭을 보던 그는 눈을 세게 비비며 다시 바라봤다.
‘뭐지.. 말이 바뀌었나. 갈색이 왜... 음? 검은 색 말이 마을에 있었나?’
-스윽
“음? ... 으갸갸갹!”
고개를 돌려 마차에 메인 말의 얼굴을 확인한 그는 비병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며 몸을 뒤로 움직였다.
-캬오?
-캬옹?
말 이 있어야할 자리에 ‘검은 호랑이’가 그것도 두 마리나 있었던 것이었다. 혼비백산한 그는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파이에게 애처로운 눈을 했지만, 파이는 이를 무시하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야! 나도 지붕 좀 올라가자니까!”
“꺼져. 짜샤! 나 이길 수 있으면 올라오던 가!”
“치사하게!”
돌아가는 길에도 여전히 지붕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둘이었고, ‘어지 줄을 잡아당기기만 해봐’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검은 호랑이’ 때문에 잡고 있는 고삐를 놓을지 말지 한 참을 고만하고 있는 마이클 때문에 출발이 한참이나 지연되었다.
“뭐해! 얼렁 출발 해!”
“나, 난 호랑이로 운전 해본 적이 없다고!”
“그럼 누가 호랑이로 운전을 해봤겠냐! 얼렁 가자. ‘고양’아 ‘고랑’아 가자!”
-어흥!
“으아아악!”
나름 맞는 말을 한 파이에게 반박을 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고삐를 느슨하게 잡고 있을 때, 파이가 출발하자는 말에 두 ‘검은 호랑이’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마이클은 어쩔 수 없이 ‘검은 호랑이’ 두 마리가 운전하는 마차를 세상에서 처음 운전하는 사람이 되었고, 이후로도 그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업적을 세웠다.
영지에 한 바탕 소란이 벌어졌으나, 마이클은 설명할 기운도 없이 좀비처럼 자신의 숙소로 들어가 기절하듯 잠들었고, 그는 무려 36시간을 잔 후에 깨어났다.
“꿈... 이었지? 휴우...”
긴 잠에서 깨어난 그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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